학기가 시작하고 난 뒤 약 한 달이 지났다. 이제 조금 학교도, 수업도 파악하고 글을 쓸 시간이 생겼다. 내년 3월 초에 학기가 끝나는 걸로 생각한다면 1/4 정도를 보냈다. 난 첫 학기의 초반을 어떻게 보냈을까?
일단, 첫 주에는 전체 신입생을 대상으로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총 3개의 오리엔테이션이 각각 개별적으로 있었는데, 외국인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전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교환학생오리엔테이션이다.
외국에서 온 독일 유학생이라면, "외국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빠지지 않고 꼭 참석해야 한다. 이때, 안멜둥과 비자청 발급 예약을 잡아 준다. 예약 플렛폼에 각각 다른 2개의 날짜를 정해 놓고, 이 날 하루 종일 15분 간격으로 외국인 신입생들은 암트에(Bürgeramt(우리나라의 동사무소같은 관청), Ausländerbehörder(외국인청)) 예약을 잡을 수 있다. 예약일에 맞춰서 Bürgeramt에 가면, 안멜둥을 하고 나서 Ausländerbehörder 창구로 가서 바로 비자를 받거나, 서류가 준비 안된 학생들을 위해 날짜는 한달 간격으로 되어 있었다. 암트에서 시간을 내어 신입생들을 몰아서 행정처리를 해주는 것이다. 참고로 안멜둥에는 WGB(Wohnungsgeberbestätigung, die Bestätigung des Wohnungsgebers, 직역:보눙을 세 주는 사람의 확인서) , 학생비자발급에는 비자기간동안 유효한 보험가입확인서 및 재정증명서(지역에 따라서 슈페어콘도, 또는 계좌잔액증명서), 학교등록증이 미리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한국이 아닌 독일에 입국해서 비자를 받을 예비 유학생이라면 한국에서, 또는 독일 입국하자마자 이런 서류를 미리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아무런 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혼자 독일에 와서 어학연수를 했던 3년전 을 생각하며 정말 편리하다. 일처리가 매우 느린 독일에서 외국인에게 의외로 중요한 문제인 비자를 초반에 처리할 수 있고, 문제가 있을 경우 조언(Beratung)을 구할 기관들도 있으니, 어학연수 일 때 보다는 훨씬 좋은 것 같다.
둘째주, 보통 첫째주 또는 늦어도 둘째주에는 학과별 신입생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된다. 학과 오리엔테이션은 꼭 꼭 참석해야 한다. 한국과 다른 독일의 대학 시스템에서 어떻게 졸업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졸업하기 위해서 어떤 과목을 얼마만큼 이수해야 하는지, 졸업을 위한 학점이수를 위해 필수적인 시험 등록기간은 언제인지, 한국과 독일의 졸업시스템에 대해서 중요한 정보들을 알려주니 빠지지 말고 참석해야 한다. 게다가, 신입생들도 알게 된다. 같은 신입생들과는 학과의 중요수업을 같이 들을 가능성이 많다. 이들과 정보교환은 수업을 듣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셋째주 부터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 된다. 이 기간 전까지,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면서 학기 계획을 짜야 한다. 어떤 수업들을 선택해서 한학기의 포트폴리오를 짜는 지에 따라 생활 패턴이 결정된다. 나는 미리 하지 못했다.
조금 늦었긴 하지만, 셋째주가 시작되자 수강신청을 시작했다. 우선 학제에 맞춰서 이번 학기에 개설되어 있는 수업 중에 내가 졸업을 위해 "수강해야" 하고, "수강할 수 있는" 수업을 골라 리스트에 모았다. 그리고 수업 카달로그에 나와있는 정보들을 하나하나 보면서 이 중에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한 수업을 다시 골랐다. 그러자 대략 1학기에 권장되는 이수학점의 2배수가 뽑혔다. 다른 학생이 말하길, 독일은 수업청강에 관대하고, 게다가 온라인 수업이기 때문에 수업을 등록해 놓고 봐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뽑힌 수업을 모두 등록해 놓고 시간이 겹치면, 노트북과 아이패드 화면 녹화로 녹화한 후 못 본 수업은 저녁에 다시 보았다. 그렇게 수업을 1주일 정도 들으니 이번 학기에 끝까지 들으면서 시험을 볼 수업을 추릴 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나는 근심이 많아졌고, 이로 인해 나는 매우 불안했다.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도무지 잡히지 않았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수업명만 봐도 어떻게 시험이 나올지 무엇이 중요할지 단번에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학과 홈페이지만 쭉 훑어보더라도, 어떤 교수님이 학과에 어떤 위치에 있고, 어느 분야를 다루는지 머리 속에 그려지면서 연구실 및 교수님들과 이들이 개설한 수업이 어떨지까지 대충 구도를 예측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는 한국과 비슷한것이 많이 없었다. 그동안 어학원에서 배운 독일어와 대충 독일 유학생들 커뮤니티에서 흘려들은 것을 제외하고는, 독일 사람들, 독일문화, 독일의 대학생활에 대해 직접 경험하고 부딛치며 나의 감각으로 검증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얼 중시하고, 무엇을 덜 중시하는지 그것만이라도 알면 좋을 텐데.. 아무리 학과 홈페이지를 봐도, 보이는 것은 문자들 뿐, 그 속에 담긴 사회적의미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막상 독일에 오긴 왔지만 내가 제대로 할 것 이라는 확신도 없고, 나에게 익숙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이곳은 마치 바람 한점 불지 않는 짙은 안개가 자욱한 바다 한다운데에서 홀로 돛 하나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야하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은 첫 시작, 제대로 졸업할 수 있을지, 또 졸업 이후에 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태에서 홀로 해외에 체류하고 있다.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조금의 희망이라도 찾아보기 위해 나의 내면으로 파고 들었다. 그러다 깊은 밤이 오고, 끝내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이미 석사과정을 한 적이 있다. 이공계로 학부를 졸업하고, 문화인류학과에서 석사를 했다. 졸업 후에는 과학과 사회학의 접점이 되는 곳에서 3-4년 정도 일했다. 하지만 내가 다루던 과학이라는 것은 과학자들의 과학이라기 보다는 대중들의 과학이었고, 대부분 사회과학적인 시각으로 글을 쓰며 풀어내는 일이었다.
학부를 졸업할 때 쯤 과학을 한다는게 어떤 것인지, 어떤 문제들이 과학자들의 세계에서 중요한지 어렴풋이 알게될 무렵, 돌연히 멈춰 다른 것을 하며 8년정도 지난 후 다시 만난 수학, 흔히 말하는 과학자들의 사고방식을 다시 흉내내 보려는 것인데.. 나의 기대와 열정과는 반대로, 상당히 더디게만 진행 되었다. . 마치 창고 깊숙히 넣어 놓았던 먼지 덮인 연장을 다시 꺼내어 기름칠하며 사용하자니 삐그덕 거리고, 때로는 연장이 어디에 들어 있었는지 잊어 버려 헤메기도 했다.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과제하고, 수업을 돌려 들으면서 복습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짬이 나면, 일주일에 한번 정도 빨래 하고, 슈퍼마켓에 가서 장보고, 청소하면 나의 일주일은 끝이다. 흔히 하던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는 잠시 열여 볼 시간이 없었다. 이번 첫학기가 온라인 수업이라는 것이 너무나 다행이었다. 만약, 일어나서 샤워하고 외모를 꾸미고 학교까지 이동해야 하는 스케쥴이었다면 나는 첫학기는 완전 엉망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오전 7:30 기상
보통 어제 밤 새벽 3-4시에 잠들었기 때문에 5분만 더 자자 자자라는 마음으로 뒤척이다 50분 쯤 마지 못해 일어난다. 아침 8시부터 수업이 시작되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컴퓨터로 직행한다. 아침수업을 듣고 메일 함을 확인한다. 주로 공지사항을 과목별 홈페이지에 적어 놓지 않고, 수강생들에게 직접 메일로 보내는 경우가 많다. 메일을 읽고, 캘린더에 중요한 내용을 기록해 놓고 나면 어느 새 다음 수업시간이다.
오후 4시
그렇게 수업을 듣고 나면 보통 오후 3-4시정도가 된다. 때에 따라서 5시가 되기도 한다. 아마도 내가 있는 대학은 가장 늦게 끝나는 수업이 오후 5시에 마치는 수업인 것 같다. 이 때 부터는 과제를 시작하거나, 수업을 복습하기 시작한다. 첫학기라서 그런지, 복습이 그렇게 빠르게 되지는 않는다. 기억이 안나는 것들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가면서 내용을 보충하면서 하다보니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과 신입생 채팅방을 보면, 이건 나 뿐만은 아닌 것 같다. 몇몇 다른 신입생들도, 마찬가지로.. 그렇다고 한다..
오후 8시
이쯤 되면 저녁식사를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과제와 복습의 뫼비우스 띄 속으로...
새벽 2시 쯤
제발 12시 이전에 오늘 하기로 했던 일을 마저 끝내고 쉬고 싶다고 매일 생각하지만 매일 새벽 2시쯤은 되어야 잠이 든다. 대충 주방과 쓰레기를 정리하고 나서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고 잠이 든다.
밀프렙은 스케쥴에 따라 식사를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인데, 주로 일요일에 한번 요리를 해서 일주일치를 미리 준비해 놓는다. 한 번만 요리하면 되고,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식비도 절약할 수 있다. 빨리, 간단하게 먹고 싶은때 딱이다. 때론, 가장 간단하다는 한국음식인 라면을 끓여 먹어도 번거로울 때가 있었다. 물을 끓여야 하고.. 또 면을 끓이고.. 이런 것 조차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라면만 먹다 가는 건강에 해로울 것 같았다. (?, 라면은 영양소를 나름 갖추고 있는 괜찮은 음식이다. 하지만 나트륨을 많이 섭취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별로인 것은 분명하다.) 밖에 나가서 놀지도 못하고, 집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 과제만 하는 이 생활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은 먹는 즐거움일 것 같아서 밀프렙을 하게 되었다. 다만 밀프렙에는 전자레인지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냉장고에 넣어 놓았기 때문에 차갑다. 따뜻하게 먹어야 좋은 음식의 경우 전자레인지가 필요하다.
그럼, 나는 오늘 이 블로그는 어떻게 쓰게 되었는가 드디어 새벽까지 과제 및 복습을 하는 싸이클에서 벗어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얼마나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대충 감이 잡히기 시작했고, 마음의 여유는 물론이고, 이런 쉬는 시간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날 때 마다 블로그에 기록이라도 해야겠다. 당분간은 비록 혼자 외치는 것일 지라도 이곳이 불특정 다수가 있는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 창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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