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왜 날씨 이야기인가 싶다. 한국 친구들이 올린 벗꽃 사진들로 내 인스타그램이 도배되고 있는 지금, 난 몸을 웅크리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기모 바지와 엄마가 떠주신 녹색 목폴라 니트를 입고 히트텍 내복까지 껴입고.. 그래도 춥다. 여긴 아직 목련만 피고 졌을 뿐이다. 독일에 오기전 해외에서 살았다고 말한 만한 곳은 일본, 영국, 독일이다. 이 중 날씨 안좋기로 유명한 곳은 영국이다. 영국애들은 날씨 얘기로 시작해 영국에 살때,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날씨 불평을 들었다. 그런데, 독일에 오고서야 알았다. 호들갑스럽게 불평불만 하는 놈들은 그나마 살만한 놈들이라는 것을...
영국 날씨
독일날씨를 겪어보니 영국날씨는 그나마 낫다고 생각 할 정도다. 영국 막상 살아보면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 안에 '영국 생활의 낭만' 같은 것이 있다.
영국은 아침에 맑았다가 10시쯤 비가 오다가, 오후에는 다시 맑아졌다가 구름이 끼었다가 다시 맑았다가... 변덕이 어쩜 그리 심한지. 안개도 종종 있다. 오후 1시까지 안개가 사라지지 않는 날도 있었다. 이때는 정말 몽환적인 느낌이 많이 난다. 마치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이.. 영국에는 의외로 도시 괴담 같은게 많은데, 날씨를 보면 나도 유리창으로 비춰진 흐릿한 물체를 가지고 무서운 이야기를 하나 써도 될 듯하다.
비가 갑자기 자주 오는데 그렇게 기분나쁘지 않다. 비가 왔다가도 햇빛이 쨍하게 나와 젖은 운동화를 바싹 말려준다. 해가 날 땐 바로 공원에 가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낮에 햇빛 아래서 친구랑 재밌게 놀다가 저녁에 집에 오는데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비가 휘몰아칠 땐 좀 힘들었다. 괜히 비바람과 힘든 사투를 끝내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물에 빠진 생쥐가 되서 겨우 집에 도착한다. 다용도실에서 바닥에 물을 뚝뚝 흘리며 젖은 외투와 신발을 걸어 놓고 있는 내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샤워 후 뽀송한 잠옷을 입고 양손에 따뜻한 밀크티를 들고 있으면 그렇게 포근할 수가 없다. 영국은 겨울 저녁이 무척 길다. 12월 말, 오후 3시면 해가 지기 시작한다. 많이 어두운 시기인데, 이때는 크리스마스가 있다. 영국의 크리스마스 따뜻하고 정겹다. 이런 분위기가 이 어두운 시간들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날씨로 힘들거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독일이라 하면...
모짜르트와 바흐가 살았던 곳,
슈만과 멘델스존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
분데스리가,
투명하고 공정한,
연대의식이 높은,
돈이 없어도 공부를 많이 안해도 자신의 직업을 갖고 기본 생활 수준을 유지하며 살수 있는 곳.
교육이 좋은 곳.
등등..
날씨 이야기는 없었다.
한국에서 접했던 독일에 대한 묘사는 온통 좋은 것 뿐이었다. 미디어에서 한국의 단점과 비교되는 독일의 장점만 부각시키는 것 같다. 특히, 일본 덕분에 독일은 한국에서 상당히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일본도 얼른 독일과 같은 제스쳐를 보여야 할텐데 말이다. 물론 저런 좋은 이미지들이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아무도 나에게 독일 날씨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렇게 날씨 안 좋은 날이 많은데, 독일에 사람들은 왜 도데체 불평을 하지 않는 걸까, 음흉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 많은 시간 독일은 회색 하늘의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지배한다. 그런데, 다들 입 꾹 다물고 살고 있다는게 이해되지 않았다. 남쪽은 날씨가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북쪽은 정말 별루다. 이글을 쓰는 오늘(3월 말) 날씨인데, 하루 종일 비가 오고 회색이다. 그런데 오늘만 그런게 아니라 일주일 내내 회색이다. 다음주도 그 다음주도 그렇다. 잠깐 어두운게 아니라, 주구장장 어둡다가 하루 날씨가 좋았다가 계속... 회색이다. 일년에 반 정도는 구름낀 회색 하늘이다.
또 비는 왜이렇게 자주 오는지 모르겠다. 특히 가을에는 비가 거의 매일 온다. 영국도 이렇진 않았다. 비가 매일 온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마철에나 비가 매일 오지 어떻게 5개월 동안 거의 매일 비가 오는 게 가능하기나 하단 말인가?" 무슨 우기 건기도 아니고 말이다. 강수량은 한국과 독일이 비슷하지만 비오는 일 수는 독일이 월등히 많다. 느리지만 한 가지를 끝까지 붙잡고 끝장내는 독일 사람 마냥.. 비가 쬐끔씩 오래 내린다는 말이다. 특히 가을이 시작되는 10월 부터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해 3, 4월까지 춥고 어두운 회색 하늘이 쭈욱 이어진다. 정말 잔인하다.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회색 하늘을 끝까지 보여주면서 마지막 남은 인내심까지 시험한다. 암튼 독일은 뭐 하나 붙잡으면 끝짱 보려는 그런 기질이 있는 곳인가? 암튼,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독일에 와서 그 사랑이 진짜인지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행자를 위한 기후 검색 페이지에서 내가 있는 곳, 북쪽 하노버 날씨를 찾아봤는데, 이렇게 잘 설명한게 어딨나 싶다.
겨울은 길고, 매우 춥고, 바람불고, 대부분 구름이 낀 날씨다.
밑에 그림에서 녹색 띠를 보면 온도를 대충 알 수 있다. 11월-3월까지 약 3.8개월 춥고, 6월-9월까지 3.3개월 따뜻하다. 나머지 2개월은 cool 이다. cool 시원하지 않다. 쌀쌀하다. 그런데 4월부터 독일 사람들은 반팔을 입고 다니더라고요. 우왕.. 어떻게 그래??
이 그림은 월별로 구름이 하늘에 얼마나 많은지 보여준다. 영역이 많을 수록 자주 그렇다는 뜻이다. 1년 내내 보면 완전 맑음(푸른색)은 적다. 하지만 완전흐리다(회색)은 면적이 제일 많다. 일년 내내 하늘이 구름으로 덮이는 흐린날이 많다는 말이다. 겨울 맑을 확률 단 7프로.. 자네, 나랑 싸우자는 건가?? 한국은 추워도 해는 쨍하는 날이 많았던 것 같은데.. 아닌가. ㅠㅠ
"Waurm spielt das Wetter im April so verrückt(4월 날씨 미친 것 같아요.. 왜 이러죠)?
3, 4월 날씨는 예측할 수 없고, 혹독하다. 나는 이 4월 날씨가 초등학교 교과서 지문으로도 나오는 걸 봤다. 자전거가 앞으로 못나갈 정도로 바람이 무지 분다. 거기다 구름, 비, 눈과 우박까지 종합 선물세트로 예고없이 찾아온다. 참, 태풍도 온다. 살면서 처음으로 바람에 휘청거려 봤다. 태풍과 거센 바람때문에 기차가 2-3일 동안 마비되기도 한다. 화장하고 머리를 예쁘게 드라이 해도 집을 나서면 5분만에 화장은 번지고 머리는 망가진다. 독일 사람들이 왜 평소 화장 많이 안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리고, 독일 사람들이 왜 불평하지 않는지 알 것같다. 이들이 불평한다면 귀여운 투정이 아니다. 진짜루 안좋으니까 매번 날씨 않좋다 말하기가 자기들도 겸언쩍고 이상한 것이다. 셀프디스도 어느 정도인 것이지 이건 축구경기에서 매번 자살골을 넣는 상황인 것이다. 정말 우울각이다. 그냥 잊어버리고 다른 기분 좋아질 만한 걸 찾는게 정신 건강에 좋다고 생각한다. 이전 글이 지워져서 다시 쓰고 있는 4월 말인데, 지금도 기모바지에 니트 입고 있다... 올해는 5월 초까지 춥다고 한다.. 봄이라고 한국에 니트류 거의 다 놓고 왔는데.. 아 진짜 나한테 왜이랭.. ㅠㅠ
하지만
이런 날씨에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런 날씨에도 입 꾹닫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의 몸과 감정은 몸이 처한 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면서 긴장했던 마음이 풀어져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게 되는 것 처럼말이다. 흔히 무뚝뚝하고 재미 없다고 묘사되는 독일 사람들.. 혹시 기후의 영향이 아닐까? 이들의 특징은 다 이유가 있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사람이나 날씨나 지나치게 따뜻해서(물론 겨울은 춥지만..그러나 사람들은 일년 내내 정이 넘친다.) 자발적으로 혼자있기를 원했었다면, 독일에 와서는 마음까지 시리게 만드는 추운 날씨와 무뚝뚝한 사람들 덕분인지 스스로 따뜻한 실체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가까운 주변 사람들과 더 돈독히 지내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마음을 녹여 보기도 한다. 가끔 주어지는 맑은 날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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