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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연인과 재회하고 싶다면?

나를 사랑하는 시간들

by The 1975 2022. 9. 4.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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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을 알려드립니다까지는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성공 후기라고 하기도 좀 뭐하다. 재회를 노린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난 재회의 뜻이 뭔지 몰랐다. 요즘,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걸 '재회'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헤어진 연인과의 재회 프로세스가 있으며, 재회 골든타임, 재회를 부르는 카톡 멘트가 따로 있으며, 연락 멘트를 알려주는 것을 이용한 상담업까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재회 경험이 있었다. 남자 친구로부터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3개월 동안 헤어졌다가 내가 연락해 다시 재회했다. 이 블로그를 찾아오시는 분들은 모두 한국 분들일 것인데,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라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내가 재회했던 남자 친구는 한국인이 아닌 영국인이다.

 


나의 재회 스토리

1. 우리가 만나게 된 계기

나는 한국에서 공부한 뒤 영국에서 케임브리지라는 도시에 1년간 있었다. 오자마자 영국교회를 다녔고, 여기서 남자친구를 만났다. 난 한국 교회를 왜 안갔을까? 난 한국에서도 한국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인인데도 "넌 잡을 수 없는 여자야." 라던가 "너는 미국 사람 같아" 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심지어는 장난스럽게 넌 한국인이 아니라 재한일본인이다. 일본인스럽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뭐 개인주의 오지다는 뜻이겠지.. 보통의 한국 문화 처럼 막 거칠게 친해지는 성격이 못된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자란 김해김씨 000파 찐 한국인인데.. 암튼 난 영국까지와서 한국인들과 만나 나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 해외 거주 중인 한국 분들은 한국을 떠나올 시점의 감성에 멈춰계신 분들이 많아 교민분들을 만나면 옜날 한국 감성, 한국식 선넘기, 위계 문화가 지금의 한국보다도 더 진한 경우가 많았고, 나는 그게 굉장히 어색했다. 그리고 여기 있는 한국 교민들도 나 같은 혼종을 만나면 얼마나 불편하실까 생각해… 굳이 열심히 만나지 않았다.


이전에 미국의 중서부에 있는 M대학교에 1년 반 정도 교수님따라 가서 지냈던 적도 있고, 영어는 큰 문제는 되지 않아서.. 설교를 듣는데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영국 교회에 나간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 부목사님께서 예배후 나를 케임브리지 대학교 학생들이 모이는 젊은이 성경공부에 초대해 주셨고, 나는 흔쾌히 모임에 나갔다. 그곳에서 남자 친구가 있었다.

처음엔 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키는 멀뚱하게 크고, 희멀건한 피부에 짙은 갈색 곱슬머리, 짙은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소년처럼 조용히 앉아 있던 남자애가 있었다. 수학을 공부하고, 축구와 체스에 미쳤고 시간이 나면 피아노 연습하는게 전부였던 아직 애기 같은 남자애였다. 한 달쯤 뒤에 성경공부 후 저녁 먹는 시간에 복도에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고, 얼굴을 익혀 일요일 교회 예배 후 자주 집까지 같이 걸어왔다. 그렇게 이야기 하다가 친해졌다. 어느 날 함께 저녁을 같이 먹자는 말에 나간 게 사귀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저녁이라고 거창하지 않았다. 우린 돈이 없는 학생이니 맥도널드에 가기 위해 걸갔다. 돌바닥이 깔려있던 좁을 길을 지날 때 남자친구가 앞에 내가 뒤에서 걸었다. 이때, 친구의 등을 보며 직감적으로 느꼈다. 우리는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 날 저녁을 먹으면서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눈을 바라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지면서 남자친구는 나의 전화번호를 물어봤다.

이 날 집까지 걸어서 30분 거리였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메신저엔 이미 메세지가 와 있었다. 이때부터 거의 잠자는 시간을 빼고 계속 연락이 왔다.. 뭐가 그렇게 심심했던 걸까.. 뭐가 그렇게 내가 오늘 뭐했는지 궁금했던 걸까.. 아침저녁 할 것 없이 연락이 계속 왔다.. 엄청 심심한가봐.. 정도로 추측했다. 난 사람가리지 않고 많이 받아주는 편이라 별 생각 없이 메세지를 받아줬고 우린 메신저를 엄청 많이 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없어서 자주 만나진 못했다. 가끔 주말 아침에 만나서 운동도 같이 하고, 주말마다 케임브리지 중심가에 있는 공원 잔디에서 하는 축구경기에 나를 불러서 보러 가서 만나는 정도였다. 그렇게 2개월을 보냈다. 사실 나는 혼자 있어도 스스로 완성된 느낌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친구 사귀는데 관심이 별루 없다. 마음을 여는데 시간이 오래 두고 관찰하는 타입이라 그냥 동네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문자

그렇게 2개월이 지났는데, 갑자기 이 친구에게 메신저가 왔다. 그리고 갑자기 이별 통보했다. 침대에 누워서 문자를 봤는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면서 헤어지자고 했다. 많은 말을 했는데.. 요지는 "너에게 준 상처를 되돌 릴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며, 지금 헤어지는 게 좋겠다."는 말 이었던 것 같다. 사실 정확히 뭔 말이었는지는 생각나진 않는다. 이제 만나지 않겠다는 말이었던 것 만은 확실했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얘가 도데체 무슨 생각인걸까?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했지만 나를 만나기 싫다고 했다.

갑자기 단절의 메시지를 받으니 왜인지 내 눈에서는 닭똥 같은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난 상처를 받은 적이 없는데.. 무슨 상처를 줬다는 것이며, 난 사귄다고 생각도 안했는데 아직 만나지 않겠다니? 이게 뭔 소린가? 슬퍼서 눈물을 흘린게 아니라, 이해할 수 없어서 눈물이 나왔다. 전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난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갈망이 적은 사람이다. 상대가 싫다는데도 내가 원하는 걸 들이대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까지 먼저 연락을 해왔던 사람은 남자 친구였지 않은가?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거나, 먼저 연락도 해 본 적도 없으니, 나로서는 뭐.. 이제 만나자고 안 할 테니 내 삶을 살면 된다. 그렇지만 눈물이 나왔으니 나도 이 친구가 싫지는 않았던 것 걸까? 뭘까?


우연한 마주침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3개월이 지나갔다. 뉴스에서는 올해 최대의 추위가 온다고 했다. 하지만 영국의 겨울은 한국에 비하면 전혀 춥지 않았다. 겁만 주고 싱겁게 끝나버린 겨울이 물러가던 어느 주말, 난 도서관에 갔다. 집을 나가려는데 입을 옷이 없다. 간절기 옷들은 캐리어에 들어 있었다. 어제 입었던 두꺼운 패딩을 입고 거울 앞에 서봤는데 너무 더워보였다.  ‘그냥 오늘만 이렇게 입자!’ 대충 입고 서둘러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보이는 나무엔 새싹이 돋아 나 있었다. 이제 점점 따뜻해져 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난 그 동안 평소처럼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끔 얘가 했던 마지막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궁금하진 않았다. 뭐 내 감정은 아니니 내가 신경 쓸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그 친구 나름대로 뭔가 불편한게 생겼겠지.. 나는 아직 마음은 본격적으로 열지 않았으니 에너지를 다 쓰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뭔가 풀리지 않은 매듭이 가슴 한 가운데 있는 것 처럼 마음 한 구석이 조금 답답했다.

도서관으로 들어가 자리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는데 나는 얼음이 되어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 멀리 끝자락에 그 친구가 앉아 있었고, 우리 둘이 눈이 마주친 것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넓은 도서관에 우리 둘만 있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난 어찌해야 될지 몰랐고, 이 친구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둘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어찌 할 바를 몰라 그냥 굳어 있었다. 으악... 난 바로 3층으로 올라갔다. 책을 읽고 미디어실에서 영화를 봤다. My fair lady 라는 옛날 영화를 봤는데 뭔 내용인지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집에 가려면 2층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자신이 없어 도서관 문을 닫을 때까지 있었다. 살짝 내려와 2층을 쓰윽 둘러봤다. 아무도 없었다. 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집에 갔나 봐..'

집에 돌아왔다. 전형적인 영국식 3층집 꼭대기에 내방이 있다. 부드러운 카펫이 깔린 나무계단 제일 끝까지 올라갔다. 두꺼운 패딩잠바를 침대 위에 던지고 내려와 거실을 지나서..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 넣어둔 구운연어와 삶은 완두콩, 으깬 감자를 접시에 담았다. 티비를 켜고 전자레인지에 음식을 따뜻하게 데웠다. 오늘 집을 나설 때 부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하필 그런 데서 마주치다니, 왠 쪽팔림인가. 옷이라도 이쁘게 입고 있을 걸 그랬다. 접시를 꺼내 시끄럽게 떠드는 티비 앞 식탁에 앉아 습관적으로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이마를 짚던 손, 고개를 좌우로 흔들던 그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너무 민망한 상황. 하지만 의외로 마음 한편이 되게 가볍고, 답답한게 뻥 뚫린 듯 시원했다.

밥을 먹고 방으로 올라왔는데, 갑자기 뜬금없이 이 친구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다. 난 원래 단호박이다. 결정하는데 오래 걸리지만 한번 아닌건 절대 뒤돌아 보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이 때 내 것이 아닌 낯선 에너지가 날 찾아왔다. 마치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사물, 티끌마저 영국 케임브리지 가정 집 다락방으로 몰려와 "빨리 이메일을 보내"라며 강력하게 떠미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이메일을 썼다. 내용은 지극히 한국적이었다. '네가 헤어짐을 말할 때 이러이러했고 너를 다시 만나서 이러이러했다. 잘 지냈으면 좋겠고..블라블라' 네 마음이 후련해지도록 이 계기를 삼아 그때 하지 못했던 마지막 점을 찍겠다는 의도의 편지였다.

 

 

재회란 이전과 전혀 다른,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

다음날 답장이 날라왔고 나는 기함했다. 이 친구는, 나의 말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넌 나에게 억한 심정이 남아 있어." 라고 말하면서, 나의 말 하나하나에 말꼬리를 잡아 반박하는 답장을 보내온 것이다. 이메일을 본 순간 머리 뚜껑이 열리면서 버럭 화가 났다. 난 왠만해선 원래 화를 잘 안 낸다. 화를 잘 안낸다기 보다, 왠만해서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은 지금껏 없었다는 말이 맞다. 고등학교때 내 도시락이 너무 풍성하다며 점심시간 마다 허락없이 이것저것 집어먹고 날 참 불편하게 했던 학생이 있어도 난 마치 절에 있는 요동치 않는 부처님 금동상처럼 전혀 반응하지 않았었다. 고3때 담임 선생님께서 유일하게 학생에게 별명을 붙여주신다며 나를 돌부처라고 부르실 정도였다. (선생님 저 크리스천이에요. ㅠ일요일에 교회 간다고 주일 아침 자습도 빼주셨잖아요.)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빡침이었다. 화가 잔뜩 나는데 이 친구에게 설명하지 않으면 나중에 죽고 나서 편히 자들지 못하고 시퍼렇게 살아 내 억울함을 해소해 달라고 도시를 떠도는 유령이 될 것 같은 그런 느낌 아는가? (사실 케임브리지는 도시유령괴담으로도 유명하다ㅋ)

난 바로 이 친구의 반박에 반박을 더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다음 날.. 와…이 친구도 지지 않고 내 반박에 반박을 얹어 이메일을 보냈다. 아니.. 이놈이?? 더 화가났다. 근데 아는지 모르겠다. 상대에 대한 화도 여러 종류가 있다. 상대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정이 뚝 떨어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거 말이다. 2주 동안 우린 잽라이트 훅을 날리며 이메일로 싸웠다. 무슨 100분 토론을 하는 것 마냥..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는데, 문화 차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한국과 영국/유럽은 서로 정서가 다르다. 한국적인 말을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을 공격한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한국이라면 받아들어졌을 이야기, 내가 한국적인 서사를 펼치면 남자친구는.. <왜 이말을 하는거야 이해할 수 없어…니가 왜 지금 이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싸웠다. 그러면서 우리 사이에 벽이 허물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메일이 오고 가면 갈수록 서로에게 쌓었던 오해와 앙금이 조금씩 풀어지고 우리의 언어가 점점 몽글몽글해짐을 느꼈다. 그러면서 난 이 친구를 다시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난 주저하지 않고 이메일 맨 마지막에"널 다시 만나고 싶어…!."라고 썼다. 이틀 뒤 답장이 왔다. "다음 주 수요일 오후 5시에 시간 있어? 음.. 우리 집에서 만날까?"라고 적혀 있었다. 아직도 그 순간을 기억한다. 다음 주 수요일 오후 5시.. 집 이래야 봤자 엄마랑 동생들이 같이 살고 있는 집이다. 이 집에서 많이 만났다. 새해 전날 밤도 이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냈고, 일요일마다 교회 끝나고 남자친구 가족들과 밥도 많이 먹었다. ㅋ

재회란 이전의 관계를 다시 이어가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 변화된 두 사람이 만나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왜 우리가 와츠앱도 아니고 이메일로 싸웠을까? 서로 전화번호를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헐.. 너도 나랑 비슷한 성격이었구나. 우린 전화번호도 다시 교환했다. 난생 처음 누군가로부터 헤어짐 통보를 당했고, 닭똥 같은 눈물을 처음 흘려봤다. 이 친구를 다시 만나면서 나는 이전과 다른 마음 가짐을 가졌다. 언제 다시 헤어지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이 친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다시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도 아니다. 언제 헤어지더라도 내 자신에게 후회를 남기거나 부끄러운 기분이 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상처받거나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상대방이 좌지우지 할 수 있는게 아니다. 내가 내 목소리에 충실하고 후회 없이 보냈다면 아무도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내 자신은 언제나 제일 소중하니까. 그렇게 다른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았다.

우리는 매일 만나다시피 했다. 만나면 시간은 어쩜 그렇게 빨리 가는지.. 일요일엔 낮 2시에 만나 3시간 논 것 같은데 시계를 보면 밤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뭘 대단한 걸 하지도 않았는데 항상 시간은 휘리릭 저 멀리에 있었다. 작은 마을에서 어디 갈 때가 있나, 이때 둘이서 안 가본 카페와 레스토랑이 없었고 주위 공원과 자전거 산책로를 거의 다 섭렵했다. 칼리지 별로 돌아다닐 수 있는 데는 다 돌아다녔고, 도서관도 자주 가서 공부했고 주변에 알고 있는 한국 친구들과 함께 만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친한 교회 친구들과 함께 여행도 많이 갔다. 차를 렌트해 바다도 가고, 농장이 있는 시골도 갔다. 그렇게 8개월 정도가 흘렀다. 어느새 쨍쨍한 여름, 여름의 정점이 도;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왔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일요일 우린 교회에서 같이 예배를 드렸다. 밥을 먹고 주변을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녹색 예수님(Jesus green) 공원에 밤 늦게까지 앉아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우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냥 이유 없이 모든 게 짜증 났다. 이 친구에게 짜증을 다 쏟아냈는데.. 화도 안내고 그냥 듣고 만 있어서 더 화가 났다. "나 갈거야!" 라며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갔다.

그런데, "아 추워.." 라는 말을 남긴채.. 이 친구는 마치 잘 됐다는 듯 인사도 없이 먼저 훌쩍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게 아닌가?? 나 내일 아침이면 한국 가는데???? 응? 앞으로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데? 나 한국 가면 너랑 계속 연락할 자신 없는데.. 아쉬운 티도 안 내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집에 가다니.. 알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밤을 새웠다. 한국에 돌아가면 직장도 잡아야 하고, 복잡한 일상 속에 난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거고, 그 사이에 이 친구를 넣을 자리가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야 우린 한국 가면 우린 연락을 할 수 있을 지 장담을 못하겠어.. 이런 내 맘과 우리의 미래를 남자 친구는 아는지 모르는지...캐리어만 덩그러니 남은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밤을 샜다.

버스 몇 시에 타냐고 물어봐서 버스정류장에 나올 줄 알았는데, 늦잠을 거하게 주무신 모양이다. 코빼기도 비취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해 문자를 보냈다. "나 이제 한국 가니 더 이상 연락하기 힘들어, 이제 진짜루 안녕이야 고마웠어 잘있어"라고 문자를 보냈다. 문자로 이런 이별은 별로인가?? 싶었다가도 이전에 이 친구가 사귀기도 전에 헤어지자고 헛소리 해서 날 깜짝놀라게 했던 걸 생각하면 쌤쌤아닌가. 그런데 이 친구는 비행기 타기 전까지 전화면서 나를 끝까지 붙잡았다.

한국에 와서도 우린 계속 연락했다. 부자집딸이 아닌 나는 직장을 구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하지만..한국에서 직장을 잡지 못했다..하지만 1년 뒤 난 운 좋게? (운이 좋았던 건지 모르겠다) 런던에 직장을 잡았다. 뭐 세상을 구하는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해외에서 취업비자로 일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호들갑 떨면서 영국에 다시 돌아왔다. 사실 더 연애할 자신이 없어 이 친구와 헤어지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리고 당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주말이나 휴일에 런던이나 케임브리지에서 만났다. 가뜩이나 비싼 곳 영국에서.. 교통비로도 돈을 많이 썼다... 이 친구도 마찬가지 런던에 자주 놀러왔다 가느라고 힘들었을 것이다. 

어느 토요일 오후, 우린 캠강 근처를 산책했다. 그는 갑자기 몸을 돌려 나를 보며 이상한 질문을 했다. "넌 내가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 갑자기 뭔 말이 이래?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남자 친구의 눈을 쳐다봤다. 마치 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도 직감적으로 그 눈빛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 사실 별 볼일 없는 놈이야. 나 너무 자신이 없어, 외로워.. 빨리 대답해줘. 내가 앞으로 잘해 낼 수 있을 거라고, 당당히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야. 세상이 나를 봐주지 않아도 너만은 나를 끝까지 믿어준다고 말이야.'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무슨일이 있었나?.. 싶었지만 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대꾸하지 않고 대화 주제를 돌렸다. 만약.. 원하는 대로 대답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프러포즈할 것 만 같은, 더이상 되돌릴 수 없는 곳까지 마음이 가버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내 인생은 아직 새로운 챕터로 넘어갈 때가 되지 않았다. 아직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정하지 못했다. 남자 친구를 많이 아끼지만.. 이 친구가 충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 내 시간표가 이럴 때가 아니었다. 대신, 난 마음속으로만 생각했다. ‘넌 지금도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야 넌 잘 할 수 있어 그렇고 말고. 넌 성공할 거고, You deserve it. 충분히 자격 있어.’ 라고 말이다. 이 사건으로 나는 마음속에서 뭔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 나의 마음 속에서 스스로 완전히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2달 뒤 난 진지하게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헤어졌다.


연애 정산서

전혀 울지 않던 아기

서로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 하던 중 우리는 공통점을 발견했는데, 바로 울지 않던 아기였다는 것이다. 엄마는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곤 하셨다. "넌 잘 울지 않았어. 네 동생은 자다 깨면 울기부터 했지만 넌 한번 도 울지 않고 혼자 이불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어. 내가 가면 날 보고 활짝 웃었지."라고 말했다. 이 말을 했더니, 남자 친구 어머니는 남자 친구도 울지 않는 아가였다고 했다. 어쩐지 우린 성격이 비슷했다.


인생은 원래 그런거야

이 친구는 3남매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남성편력이 엄청난 분이셨다. 아버지는 이스라엘 분으로, 어릴 때 일찍 돌아가셨고, 3명의 영국인 새아버지가 이 집을 거쳐갔다. 그리고 이 친구 아래로 이복동생들이 3명이나 있었다. 총 6형제가 있는 셈이다. 이 집에 자주 놀러가면서 가끔 놀러오는 이복형제들을 모두 봤다. ㅋㅋ 남자친구는 이 사이에서 살아남아야 하다 보니 삶을 대하는 관점이 많이 달랐다.

나는 사소한 말다툼이나 트러블만 있어도 견디지 못하고 바로 손절이었다. 하지만 남자 친구는 "그런 게 인생인 거야.." 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문화 차이, 생각 차이 때문에 우리는 싸우고 화해하기를 1000번 이상 한 것 같다. 만날 때마다 싸운 셈인데, 초반에는 하루에도 최소 10번 이상은 의견차이와 문화 차이 때문에 말다툼을 했다. 그럼에도 남자친구는 전혀 삐지거나 토라지지 않았고,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고 전혀 기분 나빠하지도 않았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바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이게 싸운 건지 뭔지도 모르게 저절로 화해됐다. 말다툼은 오히려 서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줬고, 정서적으로 더 가까워질 수 있게 해 줬다. 이렇게 건강하게 싸우고 쉽게 화해할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한 3년을 붙어 지냈더니 나도 인간관계의 사소한 트러블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이 되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말다툼때문에 내 영어실력이 엄청나게 성장한 것은 물론이다. 뭐 이전에도 내 영어는 나쁘지 않았지만, 애교녀가 아닌 사고(T)로 무장된 곰이라 많이 싸우다 보니 영어의 미묘한 뉘앙스들을 잘 사용하게 됐다. 그리고 헤어질 때 남자친구로부터, "넌 내가 아는 동양인 중에 가장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야" 라는 말을 들었다. 네가 나에게 준 좋은 영향력들이다. 그런데, 나도 너에게 이런 긍정적인 영향을 줬을까?..


헤어짐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자

현재 헤어져서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헤어짐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만남에는 헤어짐까지 포함되어 있다. 재회를 해도 언젠가는 헤어진다. 심지어 결혼해서 백년해로해도 결국은 헤어진다. 나이 들어 늦게 헤어지는 것일 뿐이다. 정말, 많이 미련이 남는다면 기다리지 말고 먼저 연락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그 미련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나는 이성적인 생각과 감정적인 동요 이 둘 사이에서 보다 순수하고 강한 것을 붙잡았다. 다시 연락하는 이유는 그 사람을 다시 되찾기 위해서도 아니고, 못다 한 사랑을 이루어 결실을 만들기 위해서도 아니다. 억울한 내 마음을 보상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순수하게 상대방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가진 나 자신을 위해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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