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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차별금지법 2: 왜 아이들에게 교육 하려고 할까?

독일생활백서

by The 1975 2024. 10. 26.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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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배운 건 꼭 그 흔적을 남기고 평생 기억에 남아 그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에 반대하시는 분은 없을 것이다. 다들 어렸을 때 기억에 남는 중요한 경험들 하나씩은 가지고 계실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자신의 인생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중요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나는 어렸을 때 운동을 잘하지 못했다. 열세 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한번 수영장에 가 본 적이 있다. 거기에서 나는 나의 재능을 찾았다. 나의 몸은 순발력과 점프력은 없지만 유연성만은 우리 반에서 가장 좋았는데 나의 이런 신체적 조건들이 수영에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영반에서 우리 반 반장을 만났고 우리는 삼 개월 동안 단짝 친구가 됐다. 그런데, 평형을 배우던 중 그 친구가 교통사고를 당했고, 사망했다. 그리고 난 그날 이후로 수영장에 가지 않았다. 육 년이 지나, 그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사그라들 때쯤 다시 수영장을 찾았다. 육 년 동안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한 내가 과연 수영을 다시 할 수 있을까? 물에 들어갔는데.. 놀랍게도 나의 몸.. 엄밀히 말하면 나의 뇌다. 신체 움직임 또한 뇌에서 명령을 내리기 때문이다. 나의 뇌는 놀랍게도 그것을 단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나는 바로 수영을 했고,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삼십 년이 넘게 수영을 계속하고 있다.

어릴 때 배웠던 곳이 동네 스포츠 센터였는데 수영선생님께 칭찬을 많이 들었다. 가르쳐주면 바로바로 잘한다고 말이다. 지금 수영을 배우는 성인 분들이 계신데.. 자유형도 한달에 마스터가 안된다고 힘들다고 한다. 성인이라서 그렇다. 어릴 때 배웠으면 훨씬 쉽게 받아들인다. 어릴 때는 몸의 모든 부분이 유연해서 그렇게 운동을 받아들이기가 쉽다. 특히 수영은 더 그렇다. 내 기억으로는 어릴 때 친구들과 수영장 물속에서 물고기처럼 돌고래처럼 자유롭게 놀았다. 물속에서 360도 한 바퀴 도는 것도 아주 쉬웠다. 아마 다들 이런 경험이 있을 실 것이다. 어릴 때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아무리 높게 타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성인이 돼서 그네를 타니.. 조금만 멀리 올라가도 어지러워서 못 탄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린아이들의 뇌는 성장하기 위해서.. 뇌 세포를 뇌신경을 거미줄보다도 더 치밀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굉장히 수용적이다. 특히 유아기에 대한 연구를 보면 아이들에게 도덕적인 감각은 교육하지 않아도 5세 6세 쯤 형성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최신 연구도 아니다 1990년대에 이미 미국에서 나온 논문들이다) 

이전 글에서 말했듯이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재정되면, 성정체성, 내가 성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초등학교 또는 유치원에까지 필수로 교육하도록 법으로 제정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왜 어린이들에게 이것을 가르치려 하는가? 어릴 때는 무엇이든 잘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처음 보시는 분이 있다면 내 예전 포스팅을 보고 오시길 바란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인정하고 있는 세계관을 어릴 때부터 주입하겠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기성세대들에게 '신이 없다.' 또는 '영적인 세계가 없다. 이 세계는 물질뿐이다'라는 것을 주입시키지 못하니, 보다 어린 나이의 세대인 대학에서 대학생들에게 사상교육을 통해 유물론을 가르치고 퍼트렸다. 이제는 더 확실한 세대, 한번 배우고 뇌에 들어가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성이란 자연에 의해, 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닌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맘에 안 들면, 내 마음대로 성별을 선언하고, 네 마음대로 바꾸면 된다는 것을....

이것은 기독교인들의 세계관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기독교인들의 가진 가치관은 더이상 존중받을 수 없게 된다. 기독교 기관, 교회에서는 그들의 가치관을 교회 학교에서 가르칠 수 없게 될 것이다. 지나친 자유의 제한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성소수자다. 그것도 한국인 성소수자이다. 내가 그 친구와 친구로 지내는 것과 나의 가치관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함께 공존할 수 있다. 성소수자인 것이 전통적으로 좋지 않다는 시각을 가졌다고 모두 혐오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제대로 자란 사람은 다른 이에게 차별적인 발언을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 성소수자에 대한 것을 배우냐 아니냐 와 전혀 상관없다. 나도 그런 걸 배우지 않았으니까. 배우지 않았는데도 성소수자들을 차별하지 않고 하나의 인간으로 대해준다. 성소수자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자들은 성 소수자들 뿐 아니라 자신과 다른 다른 모든 것에 대해 혐오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들이 성 소수자라서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이유 없는 싫어함이다. 그리고 동성애자들을 혐오하는 게 과연 기독교인인지도 사실 난 모르겠다. 교회 밖에 더 많은 것 같다고 생각된다.. 성소수자들이 차별금지법을 원하는 건, 그들이 예외적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아예 강력하게 자신들을 변호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더 이상 귀찮게 자신들을 증명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법에서 말하잖아, 학교에서도 배우잖아, 이 말로 모든 것을 잠재우고 싶어 하는 것이다.

좋은 걸 가르치는 것인데 왜 그걸 반대하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만 하면 문제가 없다. 이제 아이의 교육에 대한 부모의 공간을 빼앗을 수 있다. 이제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아이의 정체성 발달에 심각한 치우침을 가져 온다. 나는 석사 과정에서 성인들의 정체성 발달과정에 대한 논문을 썼다. 정체성이란 자신의 내부에서 정립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들의 인정, 사회에서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 자신의 사회적 위치 같은 것들이 섞여서 상호작용을 통해 복합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즉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긍정적인 의견 모두 들으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오히려 학계와 수많은 전문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아에 대한 감각은 개인의 내면에서 비롯된다고 믿지만 이는 환상에 가깝다. 우리는 타인의 인정과 시선속에서 자신을 재확인하고 이름 붙인다."라고말이다. 소수자가 일반적이라는 것을 공적인 장소에서 들어야 한다면, 그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의견, 또는 성경에서는 그것을 죄라고 말한다는 것 또한 같이 들어야 한다. 탐욕과 욕심은 죄이다. 이웃을 미워하는 것도 죄이다. 거짓말은 죄이다. 성경에서 불륜은 죄이다. 동성애도 이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죄라고 말한다. 하지만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공공장소에서 한쪽 의견을 완전히 묵살해 버린다. 부모가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졌을 경우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영향이 완전히 법적으로 제한된다.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거나 훈육할 수 없게 되는 꼴이다. 오히려 포괄적 차별 금지법으로 인해 한 아이가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영향력을 제한하는 꼴이 된다. 어린 아아 일 수록 어른의 보호가 우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어린아이에게 네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고?? 아직 판단력이 없는데? 이것 또한 이상하다. 

사실..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솔직히 잘 모른다. 모두 알 것이다. 살다보면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고?" 그러한 순간들을 굉장히 많이 마주친다. 또는 인생의 경험을 통해서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내가 나를 들여다본다 해도 잘 모른다. 나와 타인과의 비교, 다른 사람과 나의 의견과의 비교 평가 등등의 내 자신이 아닌 외부와 다양한 소통을 해야만 알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정체성은 수많은 변화의 과정을 겪는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생기고 나면.. 한쪽으로만 치우친 의견만을 들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의견은 입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것이 실행되는 나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차별 금지법이 가지고 있는 사각지대에서 안타까운 일들과 표현의 자유와 자신의 신념을 발휘할 자유가 훼손되는 경우가 보도되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남자에게 남성성과 여성성이 동시에 있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다. 여성도 남성성과 여성성이 동시에 있다. 이것이 조화를 이룬다. 어떤 사람은 남성성이 더 높은 사람도 있고 여성성이 조금 더 높은 사람도 있다. 남성성도 마초적이고 우락부락한 것만이 아니다. 남자도 섬세하고 부드럽고 꼼꼼하고 대화를 좋아하는 관계 지향적인 사람이 있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남자이다. 우리 아버지가 그러하시다. 여자보다도 더 섬세하고 감성적이시며 부드러운 돌봄의 대명사다. 반면에 엄마는 우락부락하시고 말이 거침이 없고 추진력이 있고 남자답다. 하지만 엄마는 여성임에는 틀림없다. 

나 또한 여자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인형을 꾸미는 것 보다 로봇 조립세트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수다스럽지도 않고 남자를 추앙하지도 않고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지도 않는 성격이지만 나 또한 여성적인 면이 있고, 내가 여성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만약 우리 아빠가 지금 태어나셨다면 트랜스젠더가 되라는 권유를 많이 받으셨을 것이고 아마도 아빠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달시켜 나가는 가운데 다른 길로 들어섰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아빠가 그랬다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있지만 예외적으로 다른 결정을 하며 살아가는 소수의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과 공존하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상처주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도더적 가르침 많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남자와 여자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같은 성의 사람과 사랑을 하는 사람도 현존하고 있다. 이런 예외가 있으며, 사람대 사람으로 그들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않는 것.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이것을 위해 한쪽의 가치관을 말할 자유를 제한하면서까지 법제화해야 할까? 인간은 항상 변한다. 현재 동성애를 한다고 해서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사람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사람으로 인정해 주고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존중해 주면 된다. 

성중립화장실.. 이 말이 나오는 것도 굉장히 황당스러운데..나도 성적으로 개방적인 독일에 살고 있지만 이 마저도 작년 2023년 진보적인 도시 베를린에서 처음 논의 되었을 뿐이다. 난 니더작센주에 살고 있지만 이곳 수영장에서 자신이 여자라며 남성의 몸을 가진 사람이 여자탈의실에 들어오는 경우는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다. 5년 동안 일주일에 3번 수영장에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없었다. 한국에서 너무 급진적으로 변화를 감행하는 것 같아서 조금 우려스럽다. 이 문제는 감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종교적인 면뿐만이 아니라 전통적 가치를 강제적으로 무너뜨리고 이제 더 이상 옛 사고방식은 말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사회..? 자연스럽지 않다.. 

 

요즘 기독교에서 청년 세대에 집중한다고 하고, 예전 대학생들을 상대로 퍼졌던 사상교육처럼 청년들의 교육에 신경을 쓰는 흐름이 보인다. 이건 이미 예전에 유물론자들이 했던 비슷한 방법이다. 하지만 유물론자들은 이제 대학생과 청년들은 버리고, 어린아이들로 넘어갔다. 초등학교, 유치원에서 성의 경계를 허무는 세계관을 주입한다.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혹자들은 청소년기 이전의 아이들이 교회에서 신이 있다는 교육을 받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어릴 때는 어떤 사상도 가르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금 성소수자, 퀴어에 대한 가치관.. (지난 포스팅에 그 안에는 신은 없다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것도 하나의 가치관이자 사상인데.. 그러면, 이것은 어릴 때 주입하듯이 의무적으로 아이한테 가르쳐도 된다는 것일까? 이것은 안되면서 저것은 된다는 걸까? 어린아이들은 사리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특정 사상에 대한 노출이 없어야 한다면.. 그 어떤 가치관이 들어간 것도 접해서는 안될 것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이것에 초점을 두고 그 어떤 사상도 교육현장과 교회에서 주입해서는 안될 것이다. 중립적인 마땅한 사실과 지식들, 예를 들면 1 더하기 1은 2, 영희와 철수는 만나면 인사를 합니다. 이런 것만 가르쳐야 한다. 어렸을 때 배운 건 꼭 그 흔적을 남기고 평생 기억에 남아 그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꼭 기억하시길 바란다. 어떤 방향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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