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포괄적 차별금지법 1 핵심 : 한국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

독일생활백서

by The 1975 2024. 10. 25. 21:20

본문

728x90
반응형
SMALL

10월 27일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위해 한국교회가 모여 예배와 기도회를 한다고 한다.
한국을 떠나.. 독일에 있으면서 종교와 가치관을 떠나 이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하는 말을 보고 있으니 답답해서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블로그를 열었다. 한 소리를 적어 본다.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새로운 흐름

그동안 시대의 거대한 흐름이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 종교다원주의, 페미니즘, 차별금지법, 동성애 합법화, 성적 자기 결정권, 등이다. 이 흐름의 목적은 단순히 다양성을 존중하자는데 있지 않다. 남성의 사회적 거세에 있지도 않다. 여성의 남성다워짐과 인권상승에도 있지 않다. 남자와 여자의 개념을 해체하고 경계를 허뭄으로써 무교인 분들에게는 생명에 대한 전통적인 가치관, 기독교인들에게는 성경적 가치관에 충돌하는 다른 가치관 퍼뜨리는 것에 있다. (사실은 파괴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강한 표현은 가능한 보류하고 싶다. 하지만 안일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 때문에 강한 표현을 남겨 주겠다.)

이 일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대학 캠퍼스는 보이지 않는 전쟁터 같았다. 좌파 우파를 시작으로 굉장한 플래카드들이 있었다. 몇몇 단체와 동아리들을 보면, 이 곳은 숨겨진 가치관의 싸움터이자 선전장소였다. 이곳저곳 나 만큼 쑤시고 돌아다닌 사람도 없을 것이다. 많은 것을 지켜봤고, 좌파의 큰 세력? 의 몰락도 직접 봤고 경험했다. 그렇게 비리를 비판하고 청렴과 옳은 것에 대해 주장했던 좌파의 민낯과 몰락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우파에 대한 실망감과 몰락은 말해 뭐 할까. 우파는 젊은 가치관과 대화하지 못했다. 현재 그나마 남은 우파는 이제 몰락만이 남은 것 같다. 그들이 내놓은 정책들과 의료개혁은 우리 가족에게 큰 해를 입혔다. 이 두 큰 이념 싸움 아래 숨어 조용히 고개를 들었던 대학 내 세력이 있었다. <일상에 퍼져 있는 혐오>라는 이름의 워크숍을 자주 개최하는 단체가 있었다. 일부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일명 아래 조직된 단체였다. 아무튼 이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써보기로 하겠다. 할 말이 아주 많으니까. 서론이 길었다.


첫번째 핵심 충돌: 신이 있다 vs 신이 없다.

이 거대한 흐름에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바로 성의 기준에 대한 허물기, 해체이다. 엄밀히 말하면 성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 세계관의 해체이다. 왜 일까? 성별은 태어날 때 자기 선택과 상관없이 주어진다. 가족계획을 하는 부부가 임신을 통해 여자아이를 낳고 싶다고 해서 여자아이를 출산할 수 없다. 그건 그냥 정해지는 것이다. 무교는 그것을 순리라고 부르며 기독교인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이 새로운 흐름은 이제 자연이 정한 성별대로 살지 않고, 내가 나의 성별의 스스로 정하고 그 성별대로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은 자연스럽게 생명과 연결된다. 음란마귀들이 계시는가. ㅋ 섹스와 출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보다 더 근본적인 “생명에 대한 세계관”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생명은 전적으로 신이나 자연이 준 것이다. 그래서 무교인 분들은 아기는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준다고 말한다. 아기는 하늘에서 부부에게 준 천사라고 말하고, "우리에게 온 아기" 라고 말한다. 누군가 우리에게 준 생명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도 아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신에 의해 시작된 생명의 끝, 죽음은 또 어떠한가? 사람이 자신이 죽을 날을 모른다. 며칠 전 고혈당쇼크로 하늘로 가신 배우 김수미씨의 죽음은 모두를 놀라게했다. 인간은 의학적으로 몇개월만 살 수 있다고 추측할 뿐, 그 예측을 벗어나 오래 살거나 갑자기 죽는다. 죽음도 인간이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생명의 시작과 끝은 인간이 결정할 수 없다. 자연 또는 하나님이 결정한다. 성에 대한 자기 결정권이 인정되면 기존까지 있었던 생명에 대한 관점이 무너지게 된다. 또 이와 연결된 전통적인 가치관은 자연스럽게 무너진다. 새로운 가치관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다고? 이것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성에 대한 기준과 관련된 사고의 파고들어 양파를 까듯 까고 까보면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바로 신에 대한 가치관이다. 인간 이외의 존재에 대한 믿음이자, 가치관. 바로 신이 있느냐? vs 신이 없느냐? 다.


*위에 내가 믿음이라고만 쓰지 않고 가치관이라고도 말했는데, 믿음은 종교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믿음은 종교적인 것뿐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떤 사실이나 생각에 대한 신뢰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잠이 들때 까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을 따라 생활한다. 아침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탈 때 왜 타는가? 당신은 모르지만 무의식적으로 이 버스가 사고가 나지 않을 것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에 버스를 탄다. 그런 사소한 믿음부터.. 이 세상에 대한 관점까지 사람은 자신의 믿음체계 안에서 살아간다. 가치관, 신념이라고도 부른다. 예를 들면 무교인 분들도 매일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가치관에 의한 선택을 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이 순간 당신도 뇌에서 무의식적으로 "이 글이 내가 믿고 있는 것와 얼마나 다른가?" 매 순간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모든 사고와 감정의 발생, 그로 인한 선택과 행동에 당신의 믿음체계가 항상 작용하고 있다. 믿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믿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두번째 핵심 충돌:
내가 나의 주인인가. vs 나의 주인은 초월적인 존재인가?

신에 대한 관점이 정립 되면 이제 나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다.

이 블로그는 내가 만들었다. 그러므로 이 블로그의 주인은 나다. 내 맘대로 지울 수도 있고, 디자인도 바꿀 수 있다. 어떤 성격의 블로그로 운영할 것인지 내가 정한다. 나를 어떤 다른 존재가 만들었다면,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그 존재가 나의 주인입니다. 차별 금지법과 이게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놀랍게도 그 핵심은 여기에 있다. 나의 주인은 나인가? 아니면, 나의 주인은 더 초월적인 존재인가?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생각하며 살아가기 쉽지 않습니다. 귀찮아서 안하고, 물질주의에 빠져 들여다볼 수 없고, 또 일부러 보기 싫어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깊이 고민해 본 사람들은 결국 이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신의 존재는 있는가? 나의 존재는 있는가? 참 이것만으로도 생각과 행동이 많이 달라진다.

한국의 옛말에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라는 말이 있다. 무교인 한국인들 중에도 ‘인생은 운이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또 운명이 인생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내 인생이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내 결정과 행동만으로는 내 인생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아보신 분들은 알것이다. 인생의 본질은 자아 실현도 아니며 "인생은 내 마음대로 안되더라."라는 것임을.  기독교인들은 내 인생은 하나님이 주인이라고 믿는다. 나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그래서 나의 뜻, 한국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나의 의, 영어로 self-righteousness를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내가 하고싶은 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치관이다. 내가 사는 인생은 하나님이 잠시 이 세상에 내보내 주신 것이며, 언젠가 죽음을 통해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내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성 vs 태어날 때 내 의미와 상관없이 받는 성

이건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성과 생명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이 전에는 영적인 영역 신비의 영역에 있는 것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내 느낌과 생각이 옳은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은 백 퍼센트 내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시대에 숨겨진 거대한 흐름의 핵심은 신은 없으며, 나의 주인은 백퍼센트 나다. 라는 것이다. 내가 이걸 하고 싶은데,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것은 전통적인 가치관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다.. “내가 나의 주인이 된다”. 고로 나의 성별까지 이제 내가 선택한다. 그리고 죽음까지 내가 결정한다. 안락사... 이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이것은 단지.. 세력다툼이 아니라, 세계관의 전쟁이었다. 기독교인이 아닌 내가 봐도 삶과 죽음 생명의 신비..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없는 영적인 세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이제부터는 인간의 사고의 한계, 내가 생각하는 것만이 전부인 세계 안에서 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어져오던 영적인 관점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이며, 단순히 생각이 아닌 인간의 삶의 곳곳에 영향을 주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 확신한다. ...기독교 시각으로 보면 어찌 보면 정말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영적인 전쟁인 셈이다. 또 전통적 가치관을 가진 무교인들에게는 지금까지 우리를 지탱한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일이 된다.
 

단지 개별적 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니 안심해도 된다구요?

한국 사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아직 이르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통과 된 것은 개별적 차별 금지법이다. 그 다음에 통과될 법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다. 개별적 차별 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일 뿐이라고 하는데... 나는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필요한지 솔직히 모르겠다. 나는 개별적으로 차별보호법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성적정체성으로 직장에서 차별 받는 사람들은 인권위원회와 민사소송을 통해 얼마든지 부당한 차별을 당했을 때 법에 호소할 수 있고, 조정신청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성적지향성에 대해 다양성을 인정하는 대법관들과 법관들이 많이 임명되고 있다.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있다. 이미 충분하다. 만약,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 된다면..  전통적이고 성경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신념을 표현하는 자유를 법으로 막겠다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의 가치관을 존중하기 위해 이와 다른 가치관을 표현할 수 없게 해야 하는가?... 오히려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 할 수 있다고 본다. 개별적 차별 금지법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