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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주 부석사_윤회의 공간

일기

by The 1975 2022. 5. 2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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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한국에 갔을 때 나의 목표는 단 하나 였다. 다른 일정은 다 아무래도 좋으니 부석사에 한 번 다녀 오는 것이었다. 나는 기독교인이다. 정확히 말하면 개신교인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종교적 신념과 상관없이 절을 좋아한다. 특히, 한국인에게 절이란 어떤 종교와 종파를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주말에 부모님과 함께 동네 뒷산에 올라갈 때, 가족끼리 여행을 갔을 때, 고등학교 수학여행지, 유명한 산, 여행지, 자연이 아름다운 곳, 역사적인 유적지에는 모두 절이 있었다. 누구나 입장료 없이 들어가고 둘러 볼 수 있던 곳, 그 곳을 둘러 보던 자리에는 항상 휴식이 있었다.

 

가는길 

자동차로 다녀올 예정이어서 일찍 일어나야 했는데, 시차 때문에 쉽지 않았다. 특별한 날을 잡지 않고, 언제든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떠나는 방식의 계획을 세웠다.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아침 7시였다. '오늘이다'라는 생각에 바로 씻고 차에 올라탔다. 네비게이션을 따라 고속도로를 타고 갔는데 상주 방면으로 간 것 같다. 충주에서 소백산쪽으로 가는 길과, 월악산과 문경을 거쳐 가는 길도 있다.

 

대전 IC (서울방향)-청주분기점(상주방향)-상주분기점, 안동 분기점(영주, 원주방향)-영주IC(봉화 방면)-국도 - 부석사

대전- 부석사 가는 길

부석사란
태백산맥의 줄기 끝 부분 소백산 자락에 꼭꼭 숨겨져 있는 부석사는 한국 10대 사찰로 꼽히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신라시대 676년에 의상에 의해 건축된 화엄종 사찰로 알려져 있다. 베흘림 기둥으로 유명한 무량수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이 곳은 지금까지 고스란히 유지 된 것은 아니다. 부석사의 건물들은 고려시대에 지어진 것도 있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화재로 타버려 스님들과 시주자들의 노력으로 다시 지어진 것 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돌받침대 위 다시 지어지고 고쳐져서 한국의 역사속 세월의 부침과 흐름이 고스란히 누적된 장소이다.

 

5개의 국보, 6개의 보물 
부석사는 국보 5점과 보물 6점을 보유하고 있다. 의상대사의 초상이 있는 목조건물 조사당(국보 19호), 가장 오래된 사찰벽화 '조사당벽화(국보 46호, 내가 갔을 때는 볼 수 없었다. 손상이 심해 대전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 2026년까지 보존처리중이라고 함)', '소조여래좌상(국보 45호, 무량수전 안), '무량수전(국보 18호), 석등(국보 17호, 무량수전 앞)과 석조여래좌상(보물 220호, 2개, 자인당) 3층석탑(보물 249호, 부석사 왼쪽), 당간지주(보물 255호, 부석사 올라가는길), 고려각판(보물 735호), 오불회괘불탱(보물 1562호),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1636호) 등이다.

영적 수련을 위해 최적화된 공간 디자인
부석사는 자연과 건축적 공간이 불교적 세계관과 기가막히게 어울어져 예술적인 아름다움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걷는 것 만으로도 절실한 불교적 탐구심을 잔잔하게 건드린다. 정말 이걸 지으신 분들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기능적으로, 미적으로, 공간적으로 이곳에 위치한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적 사색을 하게 만든다. 제일 위에 위치한 부석사를 향해 걸어올라가는 길 자체가 구도의 길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 계단을 올라 수직이동하고, 또 옆에 있는 건물을 보기 위해 수평이동하면서 산책하는데, 그곳에서 지나치는 건물들의 관계가 가장 높은 부처가 놓여 있는 무량수전에 가기 위한 여정에 속한다. 

 

 

이 뿐 아니라 중간 중간 느껴지는 아름다운 자연 풍경은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열반이란 이런 걸이 아닐까 라는 힌트를 던져주고 그것을 꿈꾸게 한다. 무량수전을 향해 열심히 올라가다가 멈춰서서 얀양문에서 몸을 돌리면 소백산이 보인다. 넓은 하늘 밑에 굽이 굽이 겹겹히 위치한 소백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너무 아름다워서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에 도달하면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닐 아닐까 착각이 들 정도다. 마치 영적 수행을 하다가.. 아직은 도달하지 못한 미천한 팍팍한 나의 내면에 지쳐 있을 때 쯤, 아름다운 주변 풍경은 지치고 사그러든 불심에 조용히 불을 붙여준다. 

 

 

산책하며 사색하기 좋은 장소
부석사는 1000원을 내고 표를 사야 들어갈 수 있다. 부석사 초입에 위치한 매표소 옆에 안내도가 있다. 총 27개의 건축물이 자리 잡고 있다. 지도를 보니 산책하기 딱 좋은 곳이다. 혼자서 이것 저것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지도를 보고 어디를 갈지 정하기 보다. 눈에 보이는 대로 우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우선 먼저 경험하고 그 다음 읽고 공부하는 편이다. 게다가 처음에는 지도의 내용이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 봐야 잘 관람하는 것인지 그런 방법따위 집어치우고 얼른 이곳 저곳을 내 발로 누비며 내 오감을 통해 알고 싶어하는 타입이다. 안내도보다 내 느낌을 더 믿는 편이다. 하지만 절을 한번에 모두 둘러보려면 계획이 필요하다. 만약 부석사를 꼼꼼히 느끼고 싶다면  매표소 앞에서 지도를 먼저 보고 이쪽 길로도 가보고 저쪽 길로도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사실 나는 한번 밖에 둘러보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서야 다양한 루트로 가볼 걸.. 후회하고 있는 중. 꼼꼼히 돌아보기 원한다면 시간을 충분히 확보 하고 가는 것이 좋다. 나는 당일로 다시 대전까지 느림보 운전을 해야 해서..12시쯤 도착했는데, 18번 원융국사비각과 22번 박물관 쪽은 근처에 가보지도 못했다. 다음에 또 가야할 이유 여기 하나 추가!!


부석사 들어가는 길
안내도를 보고 부석사로 향하는 경사로를 올랐다. 뒤에 오는 관광객으로부터 이런 말이 들렸다. “가을에 은행나무 단풍이 있을 때 와도 엄청 멋있을 것 같아~!" 이 길 양옆으로 은행나무들이 심겨져 있다는 걸 알았다. 가을에 노랗게 물든 길을 얼마나 멋있을까 상상해 보았다. 올라가다 보면 곧 일주문이 나왔다. 여기서 더 걸어가면 부석사로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천왕문이 나온다.

경사로 시작_왼/ 일주문의 단_오

일주문을 지나 삼국시대 유물인 당간사주를 지나 더 걸어가면 천왕문이 있다. 아래 계단에서 올려다 보니 천왕문 지붕아래 조그마한 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려다보면 문이 계단에 걸려있는 것 처럼 보인다. 꽤 높은 돌계단을 올라가는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다가 더 올라서는 순간 절 내부의 모습이 갑자기 눈에 확들어 왔다.. 오랜만에 돌계단을 올라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할 겸 잠시 서서 뒤를 돌아 보았더니 언제 지금까지 걸어왔는지..저기 먼 길이 아득히 보였다. "이제, 속세의 길과 헤어질 시간이다." 문지방을 넘어서니 부석사에 들어와 있었고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 졌다. 

당간사주(왼)/천왕문(중)/천왕문에서 바라본 사찰 반대쪽 (오)

 

천왕문에서 바라본 사찰 내부


힘들었던 숨을 고르며 눈을 돌리니 양옆에 삼국시대에 지어진 삼층석탑이 있었다. 이날은 바람이 많이 불었다. 사진을 찍고 곧 바로 눈앞에 서 있는 범종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뒤를 돌아 보니 바깥 세상의 봉우리들이 시야의 끝에 걸려 살짝 보일 뿐이다. 아직 무량수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저 순서대로 길을 따라 올라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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